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24년 전국체전 김해종합운동장 통신감리를 마치며 (1/4화)

정보통신

by ICT찐찐찐 2024. 11. 6. 00:01

본문

 

‘24년 전국체전 김해종합운동장 통신감리를 마치며 (1/4화)

 

 

김해종합운동장 조감도 (1)

 

 

<제1화> “누가 천리길 김해를 말타고 가랬어.. ? ”

’22년 6월 어느날 내가 모르는 번호의 전화가 핸드폰을 흔들며 벨을 울렸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두툼한 경상도 사투리가 썩인 음성으로 “혹시 김해에서 일해보지 않겠습니까?”라고 다짜고짜 내게 질문을 던져왔다. “예에~?” 나는 놀란 음성으로 짧게 뒤끝을 올리며 되물어보았다. “아니~이, 김해에서 통신감리를 해볼 생각이 없냐고요?” 이번에는 그쪽에서 뒤끝을 살짝 올리는 듯 하다가 심하게 내리며 여전히 무뚝뚝하면서 짧게 말해 왔다. 어떻게 내 전화번호를 알았을까? 의문이 들기도 하고 혹시 피싱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생겨났다.

 

그러고 보니 지난 2월 대학교에서 생애 두 번째 정년퇴직을 하면서, 한국정보통신기술인협회 구직란에 무작정 구직정보를 올린 것이 문뜩 생각이 났다. 이미 나는 2015년에 방송국에서 정년퇴직을 한 후 대학에서 7년을 학생들에게 방송기술을 가르치다가 어느새 두 번째 정년을 마치고, 정부가 준 ’무료지하철 탑승카드‘를 만지며 빠르게 지나가는 세월을 원망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대로 집에서 마냥 뒹굴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그동안 써 보지도 못한 ’정보통신 기술사‘ 자격증을 꺼내 들고, ’정보통신 감리 구직란’에 나의 이력을 입력하고 한동안 잊고 있었던 것이다.

전화 속의 모르는 남자는 김해에서 ’24년 전국체전을 위해 김해종합운동장을 새로 건립하니 통신감리로 내려와 달라고 말하였다. 본사는 진주에 있는 엔지니어링 회사라고 하였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렇게 먼 곳까지 내려가 일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라고 오히려 상대를 설득하듯이 말하고 통화를 마쳤다.

사실, 내 고향은 강원도다, 초등학교를 아버님 근무지를 따라 영월초등학교에서 시작하여 6년 동안 5번을 전학하였다, 그리고 대학생활은 경상도 대구에서 했고, 군대생활은 10.26사태 당시 전라남도 장흥과 득량만 일대 섬초소에서 전투경찰로 근무했다.

김해종합운동장 조감도 (2)

 

대학을 막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서울역 앞 GoldStar(금성사) 본사에서 일하였다. 그러면서도 어린시절부터 라디오와 오디오 앰프의 소리를 무척 좋아하던 나는 평생 천직을 고민하던 중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을 개최한다는 소식에 서둘러 방송국의 문을 두드렸다. 그 결과 KBS에서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중계를 하면서 방송을 배우게 되었고, 태백 함백산 국내 최고지중계소에서 힘든 근무 경력도 쌓을 수 있었다. 그 후 새로 탄생하는 민영방송국으로 다시 직장을 옮겨 서울방송(SBS)의 창립과 목동본사 이전공사에 참여하면서 아날로그방송과 디지털방송 시대를 넘나들다 UHD방송 제안에서부터 시험방송까지 참여하였고, 방송국 경력은 결국 라디오기술팀에서 정년퇴직을 하였다. 그 후 경기도 안성에서 동아방송예술대학교 학생들에게 디지털방송기술과 VR/AR 가상세계 및 드론 항공촬영과 메타버스 등 첨단콘텐츠 제작기술을 가르쳤다. 긴 세월에 파란만장하게 전국을 떠도는 역마살이 가득한 인생이었다.

그래서 이제 감리생활 첫 경험을 천리 먼 길 김해에서 하게 된다면 아마도 옛 어르신들이 걱정스러울 때 하는 말처럼 ‘잘 가다가 삼천포로 빠진다’는 걱정으로 인해 갑자기 찾아온 일자리를 너무 쉽게 거절했던 것 같았다. 삼천포가 바로 김해, 진해, 진주 어딘가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남자와 전화를 끊자 옆에서 바느질하던 아내가 “그 좋은 일자리를 왜 안간다고 그랬어~?”라며 약간의 역정이 썩인 어조로 물어 왔다. 나 역시 “당신이 잘 몰라서 그런 말 하는데, 서울에서 가장 먼 곳이 김해와 진해와 진주야 ~.”라고 말하며 맞대응하였다. 아울러 “진주라 천리길 ~, 이라고 옛날 선비들이 말했다”고 덧붙였다.
우리 부부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아내가 먼저 입을 떼었다. “지금이 조선시대야?, 누가 천리길 김해를 말타고 가랬어? 지금은 비행기 타고 가면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김해라고 생각 좀 해봐...”라며 엄청 똑똑한 말을 던졌다.

다시 둘 사이에 침묵이 흐르다가 나는 조용히 스마트폰 꺼내 그 얼굴 모르는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 ~, 아까 말하던 김해종합운동장 통신감리 자리 아직도 유효한거죠?” 전화를 걸고 있는 내 목소리가 기대 반, 우려 반으로 떨리고 있었다. 그러자 그 쪽에서 “아하 ~, 아까 그 분이시군요, 아직 그 자리는 유효합니다. 만약 김해에 내려오신다면 임금은 조금 더 드려야 한다고 저희 사장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어서 내려와 계약을 하시기 바랍니다.” 라며 흔쾌히 환한 웃음 머금은 목소리로 말해 주었다. 그 사이에 임금이 조금 인상된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밀당 아닌 밀당으로 나는 ‘24년전국체전준비 김해종합운동장 건립사업 통신감리로 새로운 나의 세 번째 다른 인생길을 걷게 되었다.


김해로 첫 출근하는 날 “너무 걱정하지마, 틈 나는대로 자주 올라올테니까 ”라고 말하며 집을 나서는데, 낭낭한 목소리가 들렸다. “ 아니~, 그 좋은 비행기를 혼자만 타려고?, 서로 번갈아 오르내리면 재밌잖아?” 그 후 우리는 자주 공항데이트를 즐기며 살았고, 지금은 그 공항 아나운싱 소리를 그리워한다.

 

 

다음 원고에는
(제2화)에는 ’운동장 카메라 배치와 커넥터 함체 설계변경‘을 소개하고,
(제3화)에는 ’김해종합운동장 전광판 구조변경 사례‘를 소개하며,
(제4화)에는 ’메아리 없는 운동장 스피커 설계 사례‘를 소개합니다.

 

 

 

공학박사/정보통신기술사 박성규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