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정보통신기술사 합격 후기 (134회 오병용 기술사)

정보통신

by ICT찐찐찐 2024. 11. 15. 00:34

본문

정보통신기술사 합격 후기입니다.

본 글은 합격 후기 전문을 오병용 기술사 허락을 득하여 게시하게 되었으며 이렇게 합격 후기를 쓴다는 자체가 매우 기쁜 일이며, 힘든 수험시절의 터널을 모두 지났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정보통신기술사를 준비하시는 예비기술사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시길 진심을 바랍니다.

정보통신기술사 합격 후기 (134회 오병용 기술사)

 

1. 기술사가 뭐다요???

회사일에만 몰두(?)하던 2016년 초, 회사 공지사항에 생소한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정보통신기술사. 두둥!!!
요약하면 정보통신기술사 자격을 취득하는데 있어 학원비를 반값 지원해준다는 말이었다.
별 생각없이 이게 왠 떡이냐!싶어 신청을 하게 되었다.
영등포 K학원으로 매주 토요일 오전 4시간 수업을 들으러 전철을 타고 다녔다.
오래간만에 다른 부서에 있는 회사 사람들을 보는 재미도 한 몫 했었다.
아침에 학원근처 분식점에서 베지밀과 먹던 토스트가 참 맛있었다는 생각이 난다.
수업은 각 과목별로 진행되었는데, 대부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특히 통신이론은 완전 딴 세상 이야기같았다.
강의 들어오신 기술사분들께 부러움과 경외심이 들 정도였다.
답안지는 겨우 반절 정도 채우기도 벅찰 정도였다.
그렇게 몇 달 지나고 보게된 기술사 첫번째 시험.
다 쓰지는 못했지만 4교시까지 남아서 시험을 치르고 나왔다.
결과는 37.4점...그때 당시의 기분으로는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다.
'어라?! 잘하면 될 수도 있겠는데?' 라는 꿈을 꾸게 되었다.
(지금에서 생각이지만 참 순진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 이후에는 회사 지원이 없어서 혼자서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솔직히 돈을 학원에 내기가 아까운 것도 있었다. 회사 지원이 없으니까...)

 

2. 3년간의 허송세월

그 이후 3년간은 다녔던 학원 교재와 인터넷을 떠돌아다니는 자료등을 모아서 공부를 했다.
시험에 올인한게 아니라 친구들이 술먹자고 하면 오케이!하고 나가서 술 먹고,
쉬고 싶으면 한 참 쉬었다가 다시 공부하고, 여행도 가면서 시험만 여러번 보면서
3년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점수는 첫번째 맞은 점수에서 크게 벗어나질 못했다.
공부는 하는데 제대로 안하니까 점수가 당연히 좋아질 리 없었고, 가족들에게는 공부한답시고
평일 저녁이나 주말 시간을 제대로 보내지 못하니 가족들도 불만이 쌓여갔다.
어느날 저녁 아내와 맥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이왕 할거면 제대로 하던지
아니면 그만두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동안의 시간을 합치면 박사과정이 더 빠르겠다는 핀잔과 더불어...)


3. 심기일전

정말 다시 제대로 해보자는 각오로 2020년 광화문근처 K학원에 등록을 하게 되었다.
집에서 멀어서 주말마다 전철을 여러번 갈아타야 했지만, 이번에는 충실히 한번 해보자는 각오로
열심히 다니게되었다.
이번에도 글씨에 집중하다보니 시간내에 14페이지를 다 채우기가 힘들었다.
잘해야 10~11페이지 정도에서 시간이 끝났다.
글씨를 좀 더 빠르게 쓸려고 노력을 했지만, 힘만 들어가고 진도가 나가지가 않았다.
토픽 수도 300개가 겨우 넘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 허리에 문제가 생겼다.
집에서 계속 책상앞에 앉아있다가 일어나려는 순간 허리가 뜨끔하고 쓰러졌다.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119를 불러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여 근육이완제를 맞고 하루 종일 누워있었다.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허리가 경직되어 근육 경련이 일어났던 것이다.
( 그 이후에도 두번의 응급실 신세를 져야했다...)
우여곡절끝에 그렇게 시험을 보게 되었는데, 결과는 50.25점...
그 시점에 이번엔 손목에 문제가 생겨버렸다.


4. 방황

손목터널증후군.
볼펜을 쥘 수가 없는 상태로 손목에 문제가 발생했다.
서초동에 있는 B학원을 등록했다가 다시 취소를 하게 되었다.
그래도 그동안의 공부가 헛수고가 되지않도록 토픽 위주로 개념을 계속 되뇌였다.
하지만 쓰지 않고 눈으로만 보는데는 한계가 느껴졌다.
그러면서 '아! 결국 여기에서 접어야하나' 하는 좌절감을 맛보게 되었다.
1년 반이 지난 후 어느 정도 손목을 쓸 수있게 되면서 2022년 하반기 서초동 B학원에 재등록을 하게되었다.


5. 열정을 다시 한번!

재등록후 중급반 레벨에서 그룹 스터디를 하면서 나름 열심히 수업과 토픽수 늘리기, 쓰기 연습등을 꾸준히 해나갔다.
진도 중간을 넘어갈 때쯤 드디어 14페이지에 내 볼펜 자국을 남길 수가 있었다.
그때의 감정은 정말 뿌듯함 그 자체였다.
'아! 나도 14페이지를 채울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 이후 모의고사에서 계속 14페이지를 작성해 나갔다.
글씨는 그 전보다 이쁘지는 않았지만 알아볼 정도는 되었다.
그렇게 해서 보게된 2023년 1차 필기시험. 결과는 52.75점이었다.
1~4교시까지 14페이지를 다 썼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내용이 너무 빈약하였다.


6. 필기 합격!

2023년 다시 고급반으로 등록후 중급반때 같이 했던 멤버들과 스터디를 유지하면서 열심히 토픽수를 늘려나갔다.
모르는 것은 스터디 멤버들과 토의를 하면서 배워나갔다.
(지금도 그 멤버들이 정말 고맙게 느껴진다.)
과정 중간정도 지났을까? 고질적인 손목 통증이 엄습해왔다.
더이상 쓰는게 무리였다. 어쩔수 없이 강사님께 말씀드리고 매주 모의시험 문제를 반만 풀었다.
최대한 손목을 보호해야했다.
그래서 못 푼 문제는 눈으로 여러번 반복해서 보면서 머리속으로 답안지를 상상하면서 수차례 반복했다.
실제 쓰는것보다 훨씬 못하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 와중에 본가 어머니와 장인어른이 며칠 간격으로 쓰러지셔서 병원에 입원해서 수술을 받게 되었다.
본가가 있는 시골과 서울을 번갈아가면서 틈틈이 차안에서 공부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눈으로만 보고 답안지 작성은 머리속 상상으로...
2023년도 2차 필기시험 날. 운이 좋게도 내가 공부한 토픽이 매 교시마다 출제되었다.
최선을 다해 1교시 15페이지, 2~4교시까지 14페이지를 채워 나갔다.
시험보고 나오는데 오른쪽 손목이 심하게 떨렸다.
내 의지대로 제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동안 오른손으로는 숟가락도 들 수가 없었다.
한 달뒤 합격자 발표날. 스터디 멤버들과 카톡을 하면서 서로를 위로해 주었다.
(나 또한 합격 문자가 안왔기에 시험점수도 확인하지 않았다.)
발표시간 1시간이 흐른뒤 스터디 멤버중 한 분이 '어라~오병용님! 합격했는데요!' 라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이게 꿈인가???)
그때서야 시험 점수를 확인하러 사이트에 접속했다.
61.03점
뭐라 표현할 수가 없었다. 너무 기뻤다. '아! 나도 이 곳을 탈출 할 수가 있구나!'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면접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7. 면접 지옥

첫번째 면접은 면접장에 들어가서 '어.. 어.. 어..'하다 나온 기억밖에 없다.
그래도 필기합격의 기쁨이 남아있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아직도 3번의 기회가 더 남아있다'라는 생각으로...
두번째 면접을 준비하면서 4명의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서 매주 모여서 토픽을 교환하고, 서로 모의면접을 봤다.
장소도 학원, 스터디카페등을 옮겨다니면서 부지런히 준비를 하였다.
준비를 하면서 느끼게 된 것은 '아! 필기와는 완전 다른 준비가 필요하구나!'였다.
그리고 토픽 또한 필기보다 훨씬 많은 분량이 필요함을 느끼게 되었다.
순간적인 대응력과 판단력, 각 과목을 융합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등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했다.
스스로 느끼기에 4명중에 내가 제일 뒤쳐지는 느낌이었다.
그 와중에 본가 어머님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바로 면접시험이 코앞인데 어떻게 해야하나 무척 고민이었다.
그때 시골에 계신 형님이 중요한 시험이니 시험끝나고 바로 내려오라고 말씀을 해주셔서 마음이 흔들리는 가운데
2024년 상반기 두번째 면접을 보게되었다.
비슷한 유형의 문제 개념을 혼돈하고, 비상상황에 대한 대처 방안등을 제대로 답변 못하고 나와야했다.
바로 시골에 내려가서 어머니의 얼굴을 뵙고난 후 3일뒤에 돌아가셨다.
얼굴을 뵐 수있어서 다행이었다.
상을 치르고 화장터에서 화장을 하고 있는 중에 합격자발표가 있었다.
결과는 불합격.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슬픔과 미안함과 죄송함이 밀려왔다.
그렇게 2차 면접이 끝났다.


8. 한번 죽지 두번 죽지 않는다!

그렇게 다시 세번째 면접을 위한 스터디가 다시 꾸려졌다.
시작할 때부터 의욕이 없었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과 이제 두번 밖에 남지 않았다는 초조함으로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초반에 대충 기존에 했던 토픽을 반복하는 수준으로 유지만 하는 정도였다.
면접준비 시간을 최소화하여 다른 멤버들이 더 하자는것도 마다했다.
그냥 매주 얼굴보고 한번씩 모의면접 연습을 하면서 시간은 흘러갔다.
그러다 문득 '아! 이러다 이번에도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라는 두려움이 느껴졌다.
정신을 차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하나씩 정리해 나갔다.
지금까지의 답변 준비 내용과 기존 질문 내용들을 종합해서 과목별로 노트에 정리해 나갔다.
그러면서 돌발 질문에 대해 '나라면 어떻게 답변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해나갔다.
정말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정도로 읽고, 생각하고, 말하고를 반복했다.
체력 관리도 중요하여 매일 1시간 이상씩은 집근처 공원에서 산책겸 가벼운 운동을 하면서
머리속에 계속 답변을 어떻게 해야지를 고민하였다.
면접 시험 2주전.
너무 과도하게 신경이 예민해져서 불면증이 찾아왔다.
잠을 제대로 못자니까 정신이 멍해져서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정말 최악의 컨디션이었다.
수면제를 사먹자니 정신이 더 멍해질것 같아서 수면유도제를 사서 먹었다.
잠은 좀 잘 수가 있었지만 중간에 몇 번을 깨서 수면의 질은 좋지 않았다.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지 버텨야했다.
그렇게 다가온 면접 날.
최대한 침착하게,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압박 면접을 마치고 나왔다.
항상 끝나고나면 '아! 이렇게 대답했어야 했는데...'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합격자 발표를 기다려보기로 했다.
발표 당일. (오전 10시에 발표였다.)
아침에 일찍 눈이 떠져서 PC를 켜고, 기다리고 있는데, 시간이 정말 느리게 흘러갔다.
도저히 집에서 있기가 힘들어서 밖에 나와 산책을 했다.
오전 9시 50분.
걸으면서 시간을 자꾸 보게 되었다.
오전 9시 55분.
문자가 안온다. 분명 합격자에게 5분전에 합격 문자가 온다고 얼핏 들은 기억이 있는데
핸드폰이 조용하다.
아! 이번에도 역시...마지막 면접을 준비해야하나?...
오전 10시 정각.
핸드폰에 하나의 문자가 들어왔다.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미친듯이 집으로 달려갔다. 집 문을 열자마자 '여보!' 하면서 아내를 불렀다.
그리고 서로 부등켜 안았다.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면서...


9. 새로운 도전을 위하여

합격후 신입기술사 교육과 대회에 참석하면서 '아! 드디어 나도 기술사가 되었구나!'라고 실감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기술사로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할텐데'라는 마음 한편에
남들이 내가 기술사인 것을 알아봐줬으면 하는 자만심 또한 속에서 꿈틀거렸다.
다시 한번 나를 되돌아 본다.
처음에 내가 기술사를 시작하면서 마음먹은 것은 남을 위한 봉사였다.
그런데 지금 기술사가 되었다고 거만해질려는 내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다시 마음을 다잡아 본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다시 하나씩 준비를 해 나가고자 한다.
진정으로 좋은 기술사가 되기 위해 오늘 하루도 마음을 다잡는다.
합격할 때까지 도움을 주신 분들이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이다.
너무너무 감사를 드리고, 꼭 그 은혜 잊지 않고 마음속 깊이 간직하겠습니다.
또 다른 도전을 위하여 오늘도 열심히 달려가 보려고 한다.


오병용! 오늘도 화이팅!~

 

 

 

정보통신기술사 오병용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