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씬하면서 시원스러운 외관을 가진 김해종합운동장 초대형 전광판은 운동장에 들어서는 관중들의 시선을 빼앗는 시설물 중 으뜸이다. 필자가 그동안 많은 도시의 종합운동장 전광판의 외관을 접했을 때 부담스러울 정도로 넓은 스탠드 자리 차지와 육중한 무게감으로 인해 운동장 건축과 불균형을 이루기 쉬운 시설로 느껴지곤 하였다. 그러나 김해종합운동장 전광판은 테두리 없이 현대적 디자인의 외관부터 운동장과 잘 어울리며, 넓고 밝은 화면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전광판 구조는 외관보다도 자연 재해와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유지와 관리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경기장 전광판은 성화봉송대와 함께 공작물축조 신고를 해야 한다. 즉 높이와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엄청난 분량의 복잡한 구조계산서와 함께 ’공작물축조신고서‘에 건축구조기술사와 설계사무소의 건축사 날인을 받아 지방자치단체에 신고를 해야 공사할 수 있다. 특히 높이가 8m 이상일 경우 ’구조안전 내진설계 확인서‘와 ’내풍설계 확인서‘도 첨가되어야 하며, 건축물 자체 하부구조도 보강되어야 하므로, 외관과 크기가 어떻든 안전한 공사와 안전한 유지관리에 많은 노력과 주의를 갖어야 하는 시설물이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현재 김해종합운동장 남쪽에 자리를 차지한 전광판은 처음부터 그곳에 위치하도록 설계된 것은 아니었다. 필자가 운동장에 배치되어 업무를 시작할 때 미처 확인하지 못한 부분 중 하나가 건축조감도와 건축설계도면에서 서로 다른 부분을 인지하지 못한 점이었다. 어느날 회의실 한 가운데에 유리상자에 덮혀있는 김해종합운동장 축소 모형을 관찰하던 중 내가 보던 건축조감도와 축소모형이 보여주는 전광판 위치가 다르다는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결국 내가 보았던 조감도는 시공사 선정 당시 만들어진 것이었으며, 그 때 전광판은 북쪽스탠드 상부(2층 상부)에 우뚝 서 있었다. 그 후 ’대한육상연맹‘의 권장에 의해 운동장 전체 설계변경이 이루어졌으며, 전광판은 남쪽스탠드 상부(1층 상부, 인조잔디밭 가족응원석)로 성화대와 위치를 서로 맞바꾸면서 전광판 높이가 낮아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결과 전광판 부분의 높이가 낮아져 운동장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봤을 때 스카이 라인이 전광판으로 인해 심하게 어울리지 않은 카메라 앵글이 만들어 질 것이라는 판단에서 필자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콘크리트 기단(20Cm) 위 2m 높이에 설치되는 전광판이 더 높아져야 영상학적으로 구도가 맞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카메라 영상의 구도적 앵글만 가지고 통신감리가 발주처와 시공사 측에게 전광판 높이에 관한 설계변경을 요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더구나 앞서 언급한 건축구조계산과 내진설계 및 내풍설계의 변경을 비롯하여 공작물 높이 증가에 따른 공사비용 증가가 턴키베이스 공사에 있어서 예산 변경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어느날 ’왜~? 북쪽에 설계된 전광판 위치가 남쪽으로 옮겨지게 되었을까?‘라는 의심이 나의 머리를 때렸다. ’대한육상연맹‘의 권고가 있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위치 변경 권고에 관한 이유가 적힌 구체적인 문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 ’대한육상연맹‘의 육상경기 규칙이나 기술규칙도 찾아보았으나 거기도 ’1종과 2종 육상경기장에는 전광판이 필요하다‘는 규정만 있을 뿐 더 이상의 기술적 언급은 없었다. 주변의 누구에게 물어봐도 어떤 도움말도 얻지 못하였다. 그저 “전광판을 북쪽에 두면 햇볕이 반사되어 눈부시지 않을까요?” 라는 답변이 어느 정도 신빙성을 갖지만, 그 반대일 경우 남쪽에 전광판을 두면 역광이 들어와 더 큰 눈부심이 발생할 우려도 염두에 둬야 하므로 완전한 답이 되지 못했다.
결국 많은 경기장을 다녀봤고, 국제 스포츠경기 중계방송도 많이 해본 필자 스스로의 경험에서 답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대한육상연맹‘에서는 육상경기장의 장축을 가급적 남북 방향으로 하고, 본부석과 메인스탠드는 운동장 서쪽에 두는 것을 원칙으로 강조하고 있다. 육상 경기가 대부분 오후와 야간에 이루어짐을 염두에 두고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햇볕을 가려주기 위한 조치임을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상적인 날씨와 바람일 경우 육상경기는 시계 반대방향으로 달리는 것이므로 대부분의 육상 출발선(스타트 라인)은 본부석에서 좌측(북쪽)이 되고, 결승선(피니쉬 라인)은 오른쪽(남쪽)에 위치하게 된다.(단, 바람의 역풍이 심할 경우는 본부석 맞은편 스탠드 아래의 예비 레인을 통해 경기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아무튼 정상적인 날씨의 경우 북쪽 스타트 라인에서 선수들 스스로가 자기의 레인을 찾고, 전광판을 바라보며 마지막 점검을 하려면 전광판은 선수 정면 방향에 위치하는 것이 유리하므로 남쪽에 설치되어야 한다. 아울러 선수가 피니쉬 라인에 골인하고 난 후 자신의 기록과 순위를 정확히 확인하려면, 바로 머리 위 가까이 즉, 남쪽에 위치한 전광판으로 큰 글씨와 선명한 화면을 통해 쉽게 확인이 가능하게 된다고 생각을 함으로써, 경기장 남쪽에 전광판을 설치할 것을 권장한 ’대한육상연맹‘의 의견이 옳다고 마음을 정리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모든 숙제가 풀린 것은 아니다. 심각하게 낮아진 전광판 높이가 경기 진행이나 선수에게 미치는 영향과 사용상 어떤 어려움이 있을 것인지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찾아보기로 했다. 사실 통신감리를 시작하기 전까지 2차원 전자회로도만 봐오던 필자가 3차원 건축도면을 통해 8층 구조의 운동장 공간을 이해하려는 노력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혹시 이해가 가더라도 정확한 확신을 할 수 없으므로 건축설계에 의견을 제시한다는 것은 업무 경계를 넘어서는 일이므로 더구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더 늦어지면 건축공사 진행상 더 크게 곤란한 일이 있을 것이므로, 전체회의 시간에 ‘전광판 설계변경의 잘된 점’과 ‘운동장 공사에서 육상연맹의 지시 이행의 중요성‘ 등을 설명하면서 전광판 높이에 대한 우려도 함께 발표를 해 두기로 하였다.
전광판에 대한 고민을 묻어두고 한참의 시간과 세월이 흘러 추운 겨울 어느날 남쪽 스탠드 1층 상부의 콘크리트 동파 방지 양생을 위해 덮어두었던 비닐하우스 제거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필자는 하던 일을 멈추고 제일 먼저 스탠드 1층 상부에 뛰어올라가 콘크리트 바닥에 삐죽히 길게 박혀있는 전광판 기단(20cm) 철근 위에 올라섰다. 그 곳에서 필자의 키높이(175cm 정도)에서 운동장을 바라봤을 때, 스탠드 상부의 콘크리트 바닥 끝부분에 운동장에 쌓여 있는 커다란 흙더미의 시작점이 보였다.
그 흙더미 부분은 운동장 트랙 안쪽의 축구 골대 부분이 될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그렇다면 전광판 설치가 콘크리트 기단(20cm) 상부 2m 높이 철골 위에 세워지므로, 전광판 바로 밑 운동장 트랙 영역에서 전광판을 봤을 때 전광판 영상의 아랫부분이 보이지 않을 수 있겠다는 필자의 생각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즉, 주로 우승자나 유명 선수에 대한 인터뷰가 벌어지는 전광판 아래 트랙 영역에서는 전광판 영상 하단 부분의 사각지대가 발생하게 된다. 전광판 정면에 폭이 약 10m 정도 되는 스탠드 1층 상판(인조잔디밭 응원석) 넓이로 인해 시야각의 간섭을 받기 때문이다. 사진에서 필자가 전광판 기단 위에서 사진을 찍는 그림자와 멀리 있는 흙더미(축구장 잔디 영역)를 통해 전광판 영상 밑부분 사각지대를 확인할 수 있다.
만약 전광판 밑부분 트랙 영역에서 전광판 아랫부분 영상을 볼수 없다면, 트랙을 수 바퀴 회전하는 종목에서 주로 화면 하단에 표시되는 자신의 현재 주행시간이나 남은 회전수 및 최종 기록 등 중요정보를 못 읽을 수 있다. 그래서 전광판 영상 사각지대에 대한 규정이나 규칙에 대한 법률을 찾아보던 중 의외로 모든 공사에서 헌법과 같이 최우선적으로 기준이 되는 입찰안내서(김해종합운동장)에서 다음과 같은 중요한 내용을 발견하였다. ’주경기장에는 Full Color전광판(디지털방식)을 1대 이상 설치하되 사각지대가 없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입찰안내서에는 ’입찰안내서 숙지미비로 인한 불이익은 입찰자의 책임으로 한다.‘는 무서운 조항이 강조되고 있었다.
입찰안내서에서 강조하듯 운동장 어디서든 화면 잘림이 없고, 시청하는데 사각지대가 없으려면 전광판 자체를 더 높게 올림으로써 해결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일단 기하학적 계산보다는 CAD로 그려진 건축도면 위에 선을 그어서 대략의 전광판 필요 높이를 알아보기로 하였다. 그 결과 4m 이상 더 높임으로써 전광판 밑 트랙에서도 화면 잘림 없이 Full 화면을 볼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전광판 높이를 4m 이상 높이는 ’기술검토서‘ 제시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그 외에도 입찰안내서에는 전광판 화소에 대해 ’Pitch 6mm 이하200mm 이하 Modual의 디지털방식의 전광판’을 특정하고 있었지만, 6mm 이하의 Pixel을 23x13m 크기의 화면에 적용하면 4K-UHD급(3840x2160) 화소의 전광판을 의미하는 것이 되며, 실내 전광판이나 초호화 광고탑에 적용이 가능한 고가의 고품질 전광판을 권유하는 것이므로, 김해종합운동장에는 적절하지 못하다고 판단하여, ‘12mm 픽셀이라면 Full HD(약 200만 화소) 표현이 가능하므로 23x13m 크기의 전광판(가로 12mm x1920화소=약 23m, 세로12mm x1080화소=약 13m)’이 적절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미 기단 콘크리트가 완성된 단계이므로 결국 전광판 화면 크기는 기존 설계 도면에 반영되었던 (23m x 10m) 크기를 새로운 설계에도 그대로 사용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렇더라도 Full-HD급 전광판 표현에 큰 손실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면서도 ‘기존 도면에 적시된 화소가 12.5mm 화소인 것도 발견’되어 검토한 결과 이 이상한 12.5mm 픽셀은 특정 일본회사의 전광판 픽셀 재료로 밝혀졌다. 이 경우 일본의 특정회사 제품임을 인지할 수 있는 도면이 되므로 설계위반 사항이 된다. 아울러 이렇게 완성된 전광판은 향후 고장수리나 유지보수에서 일본제품을 계속 수입해야 하므로 장기적인 관리에 어려움이 예상되어 어짜피 다시 설계해야 했다고 볼 수 있다.
경기장 전광판은 커다란 사이니지 구조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참관자들은 경기 중 많은 시간을 전광판을 통해 선수들의 정보와 역동적인 모습을 보며 만족과 감동을 얻는다. 전광판이 없던 시절에는 포스터나 벽면에 알리고자 하는 정보와 사진이나 그림을 넣어서 전달하였다. 인천에 가면 중국인 식당가 골목 언덕길에서 삼국지 관련 그림들을 맞이할 수 있다. 이것도 중국의 문화와 옛 시대의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하는 하나의 사이니지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은 고화질 대형 디스플레이 시대이다. 도시 곳곳에 광고탑과 전광판이 즐비하며 비어있는 공간만 있으면 대형 디스플레이를 설치하고 광고를 유치한다. 과거 꽤 이름이 나 있는 운동장에 가야만 수많은 벌브 전구에 의한 대형전광판을 볼 수 있었던 시절은 발써 먼 옛 얘기이다.
이제는 LED 기술과 OLED 첨단 기술을 이용하여 HD급 동영상을 넘어서 4K-UHD급 동영상도 대형 디스플레이에서 보여진다. LED 기술과 OLED 초고화질 대형 디스플레이와 전광판 기술의 중심에 우리의 기술이 서 있다.
필자가 20년 전에 라스베가스의 구 도시 거리에서 그 스트리트 천정이 엄청 크고 긴 하나의 전광판으로 덮혀있고 화려하고 현란한 동영상이 흘러가는 것을 보았다. 국내기업 LG에서 만들고 지켜 온 전광판이며 매시간 10분정도 영상이 상영될 때마다 구름같이 여행자들이 찾아왔다가 돌아가거나 주변의 오락장으로 흡수된다고 하였다. 당시 일본의 유명 전자회사에서 그 전광판을 양보해 달라고 했지만, 지금도 굳굳이 우리 기업의 이름으로 그 장소를 지키고 있다는 얘기가 감동을 주고 있다. 그 당시에는 벌브형 전구로 이루어졌던 것인데, 지금은 첨단 디스플레이 기술로 더욱 화려하게 변화하여 수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가는 사이니지 거리로 유명해졌다.
설계변경 실행에 앞서 문제는 예산의 증감없이 어떻게 전광판 높이를 4m 이상 더 높이고, 전광판 화소 크기를 국내 표준의 12mm 화소로 줄이며, ‘구조계산서’ 및 ‘구조안전 내진설계 확인서‘와 ’내풍설계 확인서‘를 비롯하여 ’공작물 축조신고서‘ 등 서류와 새로운 설계도면까지 모든 것을 새로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지 고민이 늘어났다. 다행히 아직 공사업체가 완전히 선정된 것은 아니므로, 발주처와 시공사 및 관리단 책임자와 주무관 그리고 감리가 모여 오랜시간 상의 한 후, 모든 사양과 규격을 최고 사양으로 입찰 조건을 만들고, 조달청 최고수위의 입찰에 의해 공정한 절차를 거쳐 공사업체를 최종 선정하기로 함으로써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민원 소지를 해소하기로 결정하였다.
김해시에서 조달청 위탁 입찰을 공고하고 얼마 후 조달청은 ’협상에 의한 우선협상 대상 회사 지명‘에 관한 개찰 결과를 공개했다. 전광판 높이도 4m를 더 높이고, 화소도 12mm 픽셀로 진정한 Full-HD급 영상을 제공하며, 공사금액도 큰 증가없이 시공이 가능한 업체가 나타남으로써 전광판 설계변경 숙제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김해종합운동장을 다녀가는 많은 손님들의 눈과 귀는 어리둥절하면서도 감탄스러워 하는 표정을 엿볼 수 있었다. 먼저 눈을 황홀케 하는 깨끗한 화면과 훤칠하고 현대적 디자인의 산뜻한 전광판 자태에 놀라워하며, 한편으로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있는 경기장 메인 스피커가 운동장에 메아리 없이 뿜어내는 엄청난 소리와 낭낭하고 깨끗한 음향에 또 한번 놀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제3화 끝>
다음 원고,
(제4화)는 ’메아리 없는 운동장 스피커 설계 사례‘를 소개합니다.
공학박사/정보통신기술사 박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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